회고

hansol yang
4 min readAug 24, 2024

--

퇴사를 하며 정말 많은 선물들을 받았다.
전혀 예상을 못 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들에 대한 고마움이 오래 남는다.

돌아보면 참 꽉꽉 찬 시간이었다.

처음엔 너무 훌륭한 분들 사이에서 내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혼자 씨름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도 흩을 만큼 좋은 분들 덕에 그 시간들을 천천히 흘려보내고 의미 있는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이 회사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의 변화가 발생하는 곳이었다.
환경으로는 재택으로 바뀌었고, 업무에서는 주로 사용하는 기술에 확장이 있었다. 입사할 때 챌린징한 것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대로 찾은 셈이다. 그리고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했던 그 말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다.

먼저 팀과,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면 참 성숙한 분들과 좋은 방식으로 일해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한 팀이 되어서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치열하게 논의하기도 하고, 다 함께 우당탕탕 하기도 하며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단순히 이렇게 하자! 해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자! 했던 것들을 시스템화하고 그걸 수행하고, 한 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함께 회고하고 수정하고 다시 실행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재택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미팅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단순히 미팅만 한 것이 아니라 책도 같이 읽고, 같이 모여서 기능에 대한 분석도 하고, 그냥 놀기도 하고. 그런 활동들을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신뢰와 안정감을 쌓아갔다.
개발팀의 경우에는 팀 회의 전에 아침 한 시간 정도를 함께 모여서 잡담도 나누고 코드 리뷰도 하고, 페어 코딩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페어 코딩은 환상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되나? 그렇지만 매일 하다 보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도 확인했고. 처음엔 어색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지고 재미가 생긴다.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탈탈 쏟아낸 뒤에 거기서 쓸만한 것들을 골라 발전시켜 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안정감, 편안함을 느낄 때 더 부담 없이 그 시간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럴수록 그 시간에 집중하게 되면서 의미가 더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팀에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를 분명히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어떤 것은 출시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금세 사라지기도 했지만 모두 즐거운 과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큰 이유일 것이고,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감사하고 멋진 분들이었고, 좋은 시간이었다.

업무적으로는 코드를 처음 보고 감탄을 했었다. 너무.. 뭐가 많았다.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뭐가 많은 것에 더해서 코드 스타일도 여러 영역이 서로 다르고, 낯선 구조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했다.
작은 영역부터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업무를 시작으로 야금야금 아는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때 게임에서 이동한 영역의 맵이 밝아지는 효과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도를 넓혀갔다.
초반에는 업무와 관련된 영역의 코드를 보면서 한 줄 한 줄 내가 이해한 것들을 주석으로 달던 게 생각난다. 이때 달았던 주석들은 브런치를 따로 빼내어서 보관했었는데 그게 작업할 때 도움이 꽤 됐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개발 환경도 정돈하고, 여러 가지로 섞여있던 구조들도 분리하고,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며 작업하기에 많이 쾌적해진 상태가 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 시간을 많이 들여서 익숙해진 것도 분명 있을 것이고.그래도 티켓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영역이 어디이고, 그것과 관련돼서 함께 살펴야 하는 부분들이 그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결 마음 편하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편하게 시작했다고 과정도 순탄한 것은 아니어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도 많아 마주하는데, 혼자서 끙끙대며 오후를 보내더라도 다음날 함께 그것을 고민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잘 헤쳐올 수 있었다.

이렇게 퇴사를 하고 돌이켜서 그 시간들을 생각해 보니 쓰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게 참 많다.

2년이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행복했나? 잘 모르겠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어렵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도 많이 느끼고, 보람도 있었다. 팀원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많은 걸 했고, 배웠다. 그게 행복했던 건가? 잘은 몰라도 분명 좋았다.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2년여가 어떻게 갔나 모를 만큼 정말 꽉꽉 찬 시간을 보냈다. 내 생각보다 일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는지, 퇴사를 했는데도 영 어색하다. 재택을 했었기 때문에 딱히 내 행동반경에는 변화가 없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얻은 것들을 잘 소화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보내준 분들에게 속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회고 끝!

--

--

No responses yet